
저도 처음 프랑켄슈타인(2025)을 봤을 때 이 영화가 단순한 괴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이 20년 이상 준비한 이 작품은 부자 관계라는 심리학적 구조를 중심으로, 창조와 책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영화 중반까지는 긴장감이 대단했지만, 피조물의 이야기부터는 다소 감상적으로 흐르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델토로 특유의 세계관이 온전히 담긴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빅터와 크리처, 아버지와 아들의 비유적 관계
이 영화를 이해하는 핵심은 '부모-자식' 구조입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두 명의 아버지와 한 명의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생부인 레오폴드는 의술을 가르치며 삶을 상징하지만, 그 방식은 폭력적입니다. 회초리로 아들을 때리며 능력을 주입하는 모습은 마치 강압적 교육의 전형처럼 느껴졌습니다. 반면 어머니 클레어는 출산 중 사망하며 아들에게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델토로의 세계에서 '삶=긍정, 죽음=부정'이라는 일반적 공식이 뒤집힌다는 것입니다. 빅터는 엄마를 사랑했고, 비유적으로 말하면 죽음을 염원하는 인물이 됩니다. 실제로 크리처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기죠. 여기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정신분석학 개념이 작동합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아들이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심리 구조를 의미합니다. 영화에서 클레어와 엘리자베스를 같은 배우가 연기한 것도 이런 맥락이죠. 빅터는 성인이 된 후에도 연유를 마시며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다른 어른들이 브랜디를 마실 때 혼자 연유를 고집하는 장면은 그가 여전히 어머니에게 고착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델토로가 진단하는 19세기 세계가 '미성숙한 남성 중심주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전쟁을 예시로 들며 남성들의 이상주의적 결정이 결국 죽음을 낳는다고 비판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와 불, 그리고 태양의 상징
원작 제목이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인 만큼, 신화적 상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 몰래 인간에게 불을 전한 신으로, 금기를 깬 대가로 형벌을 받습니다. 빅터 역시 생명 창조라는 금기 영역에 발을 들였고, 그 결과 비극을 맞이합니다. 영화 속에서 불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빅터는 크리처를 죽이기 위해 불을 지르다가 자신의 다리를 잃습니다. 마치 절반짜리 프로메테우스처럼, 그는 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이죠. 반면 크리처는 다릅니다.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그는 태양 빛을 두려워했지만, 영화 마지막에는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시각적 대비는 델토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치인데, 여기서는 '완성된 프로메테우스'의 의미로 읽힙니다. 빅터가 실패한 불의 전달을 크리처가 완성한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용서'입니다. 크리처는 임종 직전 빅터에게 용서를 해줍니다. 이로써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사라지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되는 것이죠. 델토로는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교회를 다니며 동시에 괴물 영화를 봤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양가적 경험이 그의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고 보는데, 프랑켄슈타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크리처는 순수한 존재로 태어나 성경과 밀턴의 실낙원을 읽으며 학습합니다. 기독교적 가치관과 괴물이라는 외형이 공존하는 것이죠.
기독교 상징과 델토로의 페르소나
영화 곳곳에는 기독교적 기호가 숨어 있습니다. 생명 창조라는 설정 자체가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연상시키고, 크리처의 탄생은 죽은 신체들의 부활로도 해석됩니다. 빅터의 두 번째 아버지 할랜더가 매춘부에게 복숭아를 먹게 하며 "성스러운 과일"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창세기의 선악과를 떠올리게 합니다. 할랜더는 타락한 아담처럼 보이죠. 그는 매독에 걸리고 전쟁으로 돈을 벌며, 자신의 썩어가는 몸을 되살리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영화가 반드시 반기독교적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크리처가 성경을 읽고 학습한다는 설정, 그리고 용서와 구원이라는 주제는 오히려 기독교적 가치를 긍정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델토로 자신이 크리처의 페르소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외모 콤플렉스를 가졌지만 내면은 순수하고, 괴물 영화를 사랑하면서도 교회를 빠지지 않았던 소년. 이 모순된 두 가치가 공존하는 것이 바로 델토로의 세계관이 아닐까요? 영화 마지막, 선장 앤더슨은 빅터의 이야기를 듣고 북극행을 포기합니다. 이성 중심, 목적 지향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감정과 공감을 선택한 것이죠. 이 변화는 여성적 가치의 승리로도 읽힙니다. 엘리자베스가 크리처를 이해하고 공감했던 것처럼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창조한 존재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빅터는 실패했지만, 크리처는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았습니다. 델토로는 인간이 늑대를 죽이고 늑대가 양을 죽이는 삶과 죽음의 무정함 속에서도, 용서와 이해를 통해 다른 결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강한 자극 없이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고, 델토로 특유의 감성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제게는 단순한 괴물 이야기가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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